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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전통과 새로운 창의성을 조화시키는 블랑팡의 예술가들.

챕터 저자

제프리 S. 킹스턴

챕터 저자

제프리 S. 킹스턴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매거진 18 챕터 2

미니어처 에나멜 페인팅은 과거 중매에 사용된 것을 비롯해 풍성한 역사를 담고 있다. 

때는 500년 전. 당신은 귀족이고, 당신에게는 혼기가 꽉 찬 아름다운 딸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 가? 물론 당신 앞에는 딸에게 좋은 짝을 찾아줘야 한 다는 중요한 미션이 있다. 당신의 지위, 재력, 심지어 는 지참금 조건까지도 편지로 충분히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신 딸의 외모는 어떤가? 애석하게도 휴대폰 셀카는 500년은 지나야 나오니 말이다. 물론 해결책 은 있다. 바로 편지에 에나멜 미니어처 초상화를 동봉 하는 것이다.

1600년대 중반 특히 프랑스에서는 미래의 구혼자에게 소개하는 목적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간직하고자 제작 하는 미니어처 에나멜 초상화가 인기를 끌었다. 실제 로 집을 떠나 멀리 전쟁터로 향하는 많은 군인이 지금 의 군인들이 지갑에 사진을 끼워 놓듯 가족들을 그린 에나멜 초상화를 품에 넣고 떠났다. 이 에나멜 예술은 사진 기술이 등장하기까지 매우 성행했다.

하지만 에나멜 기법이 전성기를 구가할 동안 미니어처 에나멜 초상화 장인들은 프랑스 밖 제네바에서 적합 한 터전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초창기 (정확성이 떨어 지는) 타임피스들의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초기 워치메이킹은 두 가지 단계를 거치 며 발전해왔다. 첫 단계는 동력을 저장하는 메인스프 링의 발명과 함께 도래했다. 하지만 초기에는 시계의 정확성을 제어하는 레귤레이팅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 다. 따라서 정확한 타임키핑이 시계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없었다. 실제로 당시 시계의 경우 시침 만 있는 것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분침이 그다 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침을 놓 는 것이 소용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확성이 시계 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대두된 것은 1674년 네덜란드 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가 밸런스 휠을 발명한 이후의 일이다.

메인스프링이 발명된 후부터 밸런스 휠이 발명되기 전까지 미니어처 에나멜 페인팅이 워치메이킹에 녹아 들기 시작했다. 시계가 정확한 타임키핑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식적인 요소를 더했는 데, 그중 에나멜 페인팅의 비중이 높았고 이는 시계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그 결과 에나멜 페인터들이 제네바에 뿌리를 내리고 시계 에나멜링에 있어 위대 한 스위스의 전통을 확립해나갔다.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블랑팡의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새로운 모티브와 스타일을 찾는다.

이제 미니어처 에나멜 페인팅은 매우 희소한 예술 형 태가 되었다. 극소수의 시계 브랜드만이 미니어처 에 나멜 페인팅을 담은 메티에 다르 피스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보다 더 적은 수의 브랜드가 인하우스에서 이를 수행하고 있다. 르 브라쉬(Le Brassus) 스튜디오 에 인하우스 에나멜러들을 보유한 블랑팡은 실제로 메티에 다르에 있어 독보적인 위상을 보여준다.

블랑팡의 에나멜러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의 수장 크리스토프 베르나르도(Christophe Bernardot)이다. 크리스토프는 발레드쥬(Vallée de Joux)에서 40분 남짓 떨어진 브장송(Besançon)에 위 치한 에콜 리지오날 데 보자르(École régionale des Beaux-Arts)에서 정통 교육을 받은 예술가다. 그는 그 곳에서 에나멜 페인팅에 대한 기본 기술들을 익혔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시계 관련 산업이 아닌, 유명한 세브르 자기(Porcelaine de Sèvres, 포슬린 드 세브르 - 프랑스 고급 자기를 만드는 제조소)에서 근무했다. 그 가 블랑팡에 합류했을 때 르 브라쉬 스튜디오는 이미 예술적인 인그레이빙으로 높은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 다. 그리고 그가 에나멜 페인팅뿐 아니라 다마스크 상 감기법, 샤쿠도(shakudō) 기법까지 가져오며 블랑팡의 예술적 장인정신과 손맛의 영역이 더욱 넓어졌다.

블 랑팡은 현재 인하우스에서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표현 방식을 선보이며 차별화된 노하우를 자랑한다. 블랑팡의 에나멜링은 많은 면에서 스위스 전통을 철 저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의 에나멜링에 는 그러한 스위스 전통, 그리고 여전히 에나멜 기법을 수행할 수 있는 적은 수의 스위스 장인들과는 다른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스위스 에나멜링에서는 보통 초상화나 이 미지 위에 퐁당(fondant)이라 불리는 투명한 보호막을 덧입히는 마지막 단계를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많은 에나멜 작업을 시계 바깥 부분인 케이스에 했기 때문 이었다. 외부에 노출되기 때문에 보호막이 필요했다. 블랑팡의 경우에는 이 에나멜 예술을 다이얼 위에 담 아낸다. 밀폐된 공간인 데다가 철저히 보호받기 때문 에 페인팅의 생동감이 다소 줄어들 위험성이 있는 마 지막 퐁당 레이어를 더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두 번째는 예술적인 측면이다. 현재 얼마 남지 않은 스위 스 예술가들이 여전히 몇 세기 전부터 이어져 온 모티 브들을 고수하고 있다. 마크 A. 하이예크와 크리스토 프는 모두 무한한 창의성을 믿는 믿기 때문에, 크리스 토프는 작은 다이얼 위에 담아낼 새로운 모티브와 스 타일을 자유롭게 물색한다.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토 프가 과거의 빈티지 피스를 배척하거나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르 브라쉬 작업대 옆 쪽에는 장 도미니크 오귀스트 앵그르(Jean Dominique Auguste Ingres)의 1814년 작품 라 그랑드 오달리스크 (La Grande Odalisque)를 직접 그린 미니어처 복사본 을 비롯한 클래식한 주제의 아름다운 샘플들이 담긴 유 리 케이스가 놓여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지만,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추 구하는 예술이 과거에만 얽매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스튜디오에서 그림 작업 중인 아틀리 에의 수장 크리스토프 베르나르도. 

스튜디오에서 그림 작업 중인 아틀리 에의 수장 크리스토프 베르나르도. 

작품 제작 초기 단계로 모티브 를 선으로 그린다. 

작품 제작 초기 단계로 모티브 를 선으로 그린다. 

작업의 첫 단계는 다이얼 표면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에나멜 페인팅을 시계 다이얼에 구현하는 과정은 매 우 섬세하다. 우선 그림을 그리기 위한 표면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블랑팡 에나멜 다이얼의 베이스 가 되는 기판은 솔리드 골드 디스크를 사용한다. 골드 소재의 디스크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에나멜 표면으 로 만들기 위해서는 디스크 양면에 에나멜 층을 여러 겹 입혀야 한다. 왜 양쪽 다 입혀야 할까? 이는 변형을 막기 위해서다. 각 에나멜층을 입힐 때마다 800 ºC 온 도의 오븐에서 굽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약 에나멜 을 한쪽 면에만 칠한다면 칠하지 않은 반대쪽 골드가 가열되고 식는 과정에서 앞쪽과 달리 휘어질 위험이 있다. 이렇게 여러 겹을 입힌 후 크리스토프는 윗 표 면을 꼼꼼하게 폴리싱한다. 그랑푀(grand feu)라 불리 는 고온에서 구워내는 에나멜은 모양이 볼록하게 되 는 경향이 있다. 그림을 따로 그리지 않는 다이얼에서 는 이 자연스러운 곡선 형태가 시각적으로 매력을 선 사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블랑팡의 그랑푀 에나멜 다이얼의 경우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볼록 한 표면은 그림을 그리기에 그리 적절한 캔버스는 아 니다. 오븐에서 굽는 과정 동안 생기는 아주 미세한 금 역시도 그림을 그리는 데는 방해가 된다. 따라서 크리 스토프는 완벽하게 흠 없는 편평한 표면을 만들어내 기 위해 폴리싱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대부분의 경우 크리스토프는 꼼꼼하게 준비한 다이얼 표면에 붓을 대기 전 자신이 만들어내기 원하는 이미 지들의 스케치를 준비한다. 보통 여러 개의 후보를 놓 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친다. 크리스토프는 디자인 자 체뿐 아니라 그 디자인이 다이얼 위 다른 요소들과 어 떻게 어울릴지 균형미를 고려한다. 특정 이미지 혹은 초상화인 동시에 결국에는 시계 다이얼이기 때문에 인덱스(다이얼 중 일부는 인덱스가 전혀 없고, 어떤 다이얼은 몇 개가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12개 모두 있다)나 «Blancpain» 로고가 포함될 수 있다. 따라 서 이 모든 요소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별 한 다이얼 이미지를 따로 요청한 경우에는 만족스러 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업 시작 전 별도의 준 비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디자인 레이아웃이 결정되면 다음 단계는 컬러 준비 다. 에나멜 파우더가 무색 액체가 될 때까지 열을 가 한다. 이후 다양한 금속 산화물을 더해 원하는 컬러를 만들어낸다. 크리스토프는 특정 컬러를 만들어 낼 때 자신만의 특별한 비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일급비밀»이다. 이제 컬러가 준비되면 실제 그림 그리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시계 다이얼이 매우 작 기 때문에 그는 매우 가느다란 붓으로 작업하며 확대 장비를 이용해 작품을 본다. 수백 년 전 선조들과 달 리 크리스토프는 현미경이라는 현대적인 장비를 이용 해 작업한다.

모든 컬러가 에나멜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과정은 반드시 오븐에 굽는 과정을 수반해야 한다. 전 통적인 주제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므로 크리스토프의 주제 선택은 매우 자유롭다. 동양적인 풍경, 플라워, 제네바 호수, 라보(Lavaux) 지역의 포도원(유네스코 세계 유산), 추상적인 공상물, 나비 등이 워크숍에서 새 생명을 얻고 떠났다. 모든 다이얼은 유니크하며, 그 어떤 디자인도 재생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메티에 다르 타임피스를 소유한 이라면 자신이 세상 유일무이 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다.

스위스를 주제로 한 라보 다이얼을 통해서는 새로운 모티브뿐 아니라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다. 다이얼은 로잔 외곽에 위치한 블랑팡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 은, 제네바 호수에서 가파르게 올라가는 라보 포도원 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다이얼 위에 인상주의 스타일의 수채화를 통해 포도원, 호수, 산, 하늘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는 컬러를 희석하기 위해 서로 섞는 방식을 취하며 수채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 들어냈다.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컬러를 섞는 모습.

컬러를 섞는 모습.

각각의 에나멜 다이얼은 이 세상 유일무이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에나멜 다이얼 중 일부에는 샹르베(champlevé)라 불리 는 기법을 사용한다. 컬러가 칠해지는 표면을 완전히 편명하게 만드는 대신, 샹르베는 베이스를 깎아내 다 이얼 위에 높고 낮은 모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 작한다. 가장자리에 얇은 골드 테두리만 남도록 기판 을 깎아내어 경계를 분리하게 되면, 디자인에 깊이감 이 가미된다. 뷰린(burin)이라 불리는 송곳 형태의 도 구를 이용해 조각하며, 조각을 마친 후 스톤을 이용해 낮은 부분은 완벽히 매끈한 표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세심하게 폴리싱한다.

에델바이스를 주제로 한 다이얼에서 샹르베 기법이 사 용되었다. 에델바이스는 스위스의 국화이기도 하다. 화이트 바탕의 다이얼 위에 피어 있는 두 송이의 에델 바이스 꽃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토프는 골드 디스 크에서 다이얼의 배경이 될 부분을 깎아내 꽃잎과 잎 을 둘러싼 가느다란 골드 경계만을 남긴다. 이 방식을 통해 그는 에델바이스를 위한 가느다란 골드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낮은 배경 위로 다이얼의 꽃 부 분이 더욱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게 한다. 꽃잎에 화이 트 에나멜을 칠할 때 크리스토프는 원래 온도보다 좀 더 낮은 온도에서 구워냈다. 덕분에 실제 자연 속 에 델바이스 꽃잎의 텍스처를 반영하며 꽃잎의 오톨도톨 한 촉감을 그대로 살려냈다. 또한 에델바이스 잎의 옅 은 컬러를 재현하기 위해 초록 잎사귀에 투명한 느낌 의 특별한 그린 컬러를 적용했다.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에나멜 페인팅

에나멜 기법 중에는 샹르베 기법이 있다. 

이 특별한 디자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꽃 두 송 이의 중심 부분이다. 실제 자연의 에델바이스 꽃의 중 심부에는 몇 개의 뾰족한 금빛 작은 꽃들이 자리하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그 부분에 인그레이빙 기법을 활 용했다. 골드 디스크에서 시작해 그는 중앙에 에나멜 로 채울 매우 작은 부분만을 남겨놓고 이 작은 꽃을 섬 세하게 깎아냈다. 두 송이 꽃의 중심부를 깎아내고 에 나멜링으로 장식한 후 디스크의 아래쪽에 작은 발을 만들고, 다이얼에 낸 작은 구멍에 이를 고정하는 아플 리케(appliques) 형식으로 다이얼에 부착했다. 조각하 고 부착하는 과정을 통해 이 유니크한 다이얼에 깊이 감과 입체감이 부각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블랑팡 로고, 6시 방향 과 12시 방향 인덱스, 그리고 «Swiss Made»를 다이 얼 위에 핸드 페인팅했다.

독보적인 예술 형태와 기법을 갖춘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르 브라쉬의 블랑팡 메티에 다르 스튜디오는 스 위스에서도 희소가치가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그 들의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블랑팡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자유로운 창의성이다. 덕분에 그들은 워치 메이킹의 예술적 표현에 있어 그 한계를 폭넓게 탐험 하고 더욱 확장할 수 있다.

챕터 03

바다를 태운 화산

재에서 다시 태어난 산호초.

챕터 저자

로랑 발레스타
바다를 태운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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